삶의 마무리를 미리 준비하는 웰다잉(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관심을 두는 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이미 320만 명을 넘어섰고, 엔딩노트를 한 권 써 두는 분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남겨 두면 재산 문제까지 함께 정리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엔딩노트도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준다는 법적 유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문서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 역할이 재산 처분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준비해야, 남은 가족이 정작 재산 앞에서 곤란해지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떤 문서인가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미리 밝혀 두는 문서입니다. 여기서 연명의료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등으로 목숨만 이어 가는 치료를 말합니다. 그 치료를 받을지 말지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남겨 두는 것입니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등록기관을 찾아 직접 작성하고 등록할 수 있습니다. 등록해 두면 그 내용이 국가 시스템에 저장되어, 나중에 본인이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남겨 둔 뜻이 확인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것은 오직 의료에 관한 의사입니다. 내 재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남길지는 전혀 담기지 않습니다. 애초에 재산과는 무관한 문서라고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엔딩노트에 재산을 적어 두면 그대로 나뉘나요?
엔딩노트는 내 뜻과 정보를 자유롭게 적어 두는 노트입니다. 정해진 양식이 없어 원하는 내용을 편하게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가진 재산과 계좌 목록, 남은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장례를 어떻게 치르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것을 적습니다. 특히 재산과 계좌를 정리해 둔 부분은 남은 가족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헤매는 시간을 줄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엔딩노트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성껏 적어도 그 내용대로 재산이 나뉘도록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어디까지나 내 마음과 정보를 정리해 둔 기록일 뿐입니다.
그래서 엔딩노트에 '집은 큰아이에게'라고 적어 두었더라도, 그 문장만으로 집이 큰아이에게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남은 가족이 그 뜻을 존중해 그대로 협의한다면 결과는 같아질 수 있지만, 그것은 가족의 합의 덕분이지 노트 자체의 효력 때문이 아닙니다.
유언장은 무엇이 다른가요?
가장 큰 차이는 법적 효력에 있습니다. 유언은 법이 정한 엄격한 형식을 갖추어야만 재산 처분에 효력이 생깁니다.
우리 민법은 유언의 방식을 다섯 가지로 정해 두었습니다. 그 가운데 자필증서 유언(유언자가 손으로 직접 써서 남기는 유언)이라면, 유언자가 전체 내용과 날짜, 주소, 이름을 직접 손으로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이 요건은 생각보다 깐깐합니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유언자의 진짜 뜻과 상관없이 무효가 됩니다. 컴퓨터로 작성해 출력한 뒤 이름만 손으로 적었다거나, 날짜나 주소를 빠뜨렸다는 이유로 효력을 잃는 경우가 생깁니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엔딩노트는 이 형식을 갖춘 문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안에 '재산을 누구에게 준다'라고 적어 두어도, 그 문장만으로 재산이 그대로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럼 세 가지를 어떻게 나누어 준비해야 하나요?
세 문서는 각각 맡은 역할이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로 뭉뚱그리지 말고 목적에 맞게 나누어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산을 뜻대로 남기려면 형식을 갖춘 유언장을 씁니다. 상황에 따라 신탁(재산을 믿을 만한 곳에 맡겨 정해진 대로 관리하고 이전하도록 하는 제도)을 함께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연명의료에 관한 뜻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등록해 둡니다. 다른 문서에 그 내용을 적어 두는 것보다, 제도에 맞게 등록해 두는 편이 실제로 확인되기 쉽습니다.
가족에게 전할 마음과 정보, 장례에 관한 바람은 엔딩노트에 정리해 둡니다. 법적 효력을 기대할 자리가 아니라 남은 가족의 이해를 돕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 두면 어느 하나에 기대다가 정작 재산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써 둔 문서가 있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준비해 둔 것이 이미 있다면 세 가지를 점검해 보시면 좋습니다.
첫째, 재산에 관한 뜻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 내용이 엔딩노트에만 적혀 있다면, 형식을 갖춘 유언장으로 따로 옮겨 두어야 뜻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자필증서 유언을 써 두었다면 전체 내용과 날짜, 주소, 이름이 모두 자기 손글씨로 적혀 있고 날인이 되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빠진 것이 있으면 요건을 갖추어 다시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째, 의료에 관한 뜻은 등록까지 마쳤는지 확인합니다. 마음속으로 정해 둔 것과 등록기관에 실제로 등록해 둔 것은 다릅니다.
정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표시이고, 엔딩노트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기록입니다. 둘 다 재산을 물려주는 법적 유언이 아닙니다.
재산을 뜻대로 남기려면 형식을 갖춘 유언장이나 신탁을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세 문서를 역할에 맞게 나누어 두면 마음도, 의료도, 재산도 빠짐없이 챙길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상황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